핑크신 (The Red Shoes, 2005) 감독:김용균 각본:김용균, 마상렬 장르:공포, 스릴러 등급:15세 관람가 상영시간:103분 제작국:대한민국 작사:청년필름(주), 씨네클릭 아시아(팬텀), 아이언코스모스(주) 씨네와이즈필름(주)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분홍색 구두를 주워들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 구두를 신자마자 격한 감정에 사로잡힌다.<악어와 주나>로 장편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김용균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며, 이후에도 <불길처럼 나비처럼>, <더 웹툰:예고살인>을 연출했다.
이 작품은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(1805~1875)이 자국에 전해져 온 설화를 동화로 옮겨온 'Derødesko(영문제목 : The Red Shoes)'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.이 원작은 '핑크 구두' 혹은 '빨간 구두'로 불리는데, 한 소녀가 우연히 얻은 빨간 구두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고 발이 잘릴 때까지 추는 저주에 걸려들게 된다는 내용의 잔혹한 동화이다.
'마법사 베이커리'로 유명한 구병모 작가의 단편 '붉은 구두당'도 이 작품을 모티브로 삼을 만큼 대중에게 상당히 유명한 작품인데도 내용이 너무 섬뜩해서 이렇게 공포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.
이 작품은 2013년 개봉한 '장고: 분노의 후계자' 선전을 위해 내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"좋은 공포영화"라고 평가한 작품이기도 하지만, 김혜수에게는 옴니버스 영화 '쓰리'에 삽입된 김지은 감독의 단편 '메모리즈'에 이어 두 번째 공포영화다.
여고괴담 시리즈야 은이 공포영화에는 신인급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당시 영화계 분위기로, 20년차로 이미 톱을 찍고 있던 김혜수의 출연은 꽤 화제를 모은 것 같다.
1998년 개봉한 여고괴담, 2002년 폰, 2003년 장화, 홍련이 흥행에 성공하는 등 2000년을 전후해 공포영화 제작 붐이 일어났다.이 작품과 같은 해인 2005년 여름에만 여고괴담 4-목소리 첼로-홍미주 일가 살인사건 가발 등 4편이 공개됐을 정도였다.전년도인 2004년에는 령, 분신고등어, 알 포인트 등이 6, 7편 개봉했으니 영화제작사 입장에서 당시의 공포영화는 속된 말로 장사가 되는 장르였던 것 같다.
김혜수라는 명성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이 작품의 관객 수도 137만 명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둬 현재 국내에서 제작된 공포영화 중 10위에 올랐다.
재미있는 것은 김혜수가 훗날 인터뷰에서 "나는 공포영화를 무서워서 잘 못 본다. 핑크신도 무서운 부분을 알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고 말했다.
작품 속 '성재'(김혜수)는 소심한 성격으로 바람을 피우는 남편에게도 제대로 된 뜻을 전하지 못해 혼자 괴로움을 덜어주는 캐릭터다.결국 남편에게서 위자료도 받지 못한 채 이혼하고 딸 태수(박연아)와 떨어져 살게 된 그녀는 아버지를 끔찍이 그리워하던 테스를 위한 마음고생을 달래기 위해 유일한 취미인 구두 모으기에 집착하게 된다.
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 분홍색 구두를 신어본 그녀는 왠지 자신감이 생기고 새로 문을 연 안과의 인테리어를 맡게 된 인철(김성수)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갔다.그러나 딸 테스를 비롯해 이 분홍색 구두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하게 변한 것도 모자라 결국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 된다.
김혜수는 이 작품 속 '성재'를 "자신도 몰랐던 욕망과 본능을 발견하는 여자"라고 설명했다.즉,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'여성'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.
물론 꽤 에둘러 표현되고 혈색 가득한 신이 꽤 많은 편이라 그렇게까지 그 메시지를 간파하기는 힘들지만.
이 작품에서 놀라운 것은 수척한 모습 때문에 화장을 최소화하고 오랫동안 길러온 머리를 짧게 잘랐다는 김혜수보다는 두 달간의 오디션 기간을 거쳐 수백 명 중에서 선발됐다는 다소 터프한 이름의 태수 역의 박연아라는 아역 배우다.
당시 단편영화에 출연한 것이 커리어의 전부였다는 이 일곱 살 배우는 인터뷰에서 공포영화를 많이 본다고 했다지만, 꽤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장면에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아니 꽤 능숙한 연기를 보여준다.장면에 따라 연기 경력 20년차인 김혜수와 몸싸움까지 불사하지만 의외로 밀리지 않는 기백을 보이고 있어 이 작품 이후 몇몇 작품에 조연과 단역을 출연하면서 경력이 정지된 게 아쉽다.
몇몇 장면에서 고어한 장면도 있고 선혈이 낭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김혜수가 연기하는 '성재'가 보여주는 모습에 대부분 의존하는 작품이다.당연히 신인 여배우가 연기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녀는 이들 공포영화에서 꺅 소리만 낸다고 관객에게 공포심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연기로 증명한다.
아쉬운 점은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다른 영화와 비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.그래도 김혜수라는 명실상부한 베테랑 배우와 의외로 열연을 보여준 '박연아'라는 아역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가 영화를 채운 작품임이 분명했다.